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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글

초현실주의와 양자역학 / 양자역학 물리학자가 현대미술에 빠지게 된 이유는?

양자역학 물리학자가 현대미술에 빠지게 된 이유는?

 

미술관에 간 과학자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특히 관심을 갖는 현대미술 사조가 있나요?
“달리를 알게 되면서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게 초현실주의였죠. 보통 이렇게 한 번 관심을 크게 가졌다가 이내 관심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초현실주의 역사를 막 찾아보면서 관련 책들을 보다가 놀라운 걸 발견했는데요. 1923년 11월 ‘초현실주의 회화’라는 전시회가 파리에서 열렸고, 그 이듬해 초현실주의 제1선언이 발표됐다는 거예요. 그게 왜 놀랍냐면 초현실주의가 정점에 다다르던 시기가 흥미롭게도 제가 전공하는 양자역학이 탄생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해요.”

 

-초현실주의와 양자역학이 연관성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1920년대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사람들이 문명에 대해 가졌던 회의, 반감이 드러났던 때예요. 전쟁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을까’라며 기존 문명에 대한 환멸을 갖게 되죠. 그러면서 인간의 비이성적 측면을 조명한 프로이트가 주목받게 되고, 미술에서도 그림에 합리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초현실주의 작품들이 나오게 되죠. 양자역학이 탄생한 배경도 이와 유사해요. 양자역학도 그 이전에 존재했던 물리학과 전혀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지거든요. 이전에는 모든 물리학이 물체의 위치를 기술하거나 물체의 궤적을 운동으로 기술하는 식으로 설명했어요. 그걸 정확하게 기술하는 게 물리학의 목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양자역학을 창시한 하이젠베르크는 그런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고 했어요. 인간의 감각으로 지각되는 위치, 속도 이런 것을 정확히 기술하는 걸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 게 바로 양자역학이에요.”

 

-양자 역학의 시작에도 1차 대전으로 말미암은 당대 문명에 대한 환멸이 있었다는 건가요?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을 창시한 게 25세 때였어요. 하이젠베르크는 1900년에 태어났는데요. 이 친구가 15세가 되던 해인 1914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됐죠. 그리고 성년이 되던 1918년에 전쟁은 끝이 납니다. 가까스로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게 된 세대였던 셈이죠. 하이젠베르크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전쟁으로 말미암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있어요.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였죠. 사실 1차 세계대전은 철저하게 전선에서 젊은 청년들을 갈아 넣은 전쟁이었거든요. 후방은 안전했어요. 전방에 있던 젊은 사람들만 기관총 앞으로 달려가다 죽은 거죠. 전후 혼란스러운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독일 청년운동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독일에 대해 생각했을 겁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독일 청년들이 모여 전국을 유랑하면서 밤새 토론을 하고 고민을 해요. 아마 그런 배경이 모든 물리학의 전통을 깨버릴 용기를 준 게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 게 없이 물리학에서 이런 혁명적인 도약을 이뤄낼 수 없었을 거라 봐요. 20세기 초에 하이젠베르크로부터 시작된 물리학의 혁명도 1차 세계대전 이후 당시 사회가 기존 문명에 대해 가졌던 비판적 태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초현실주의와 양자역학이 전쟁과 당시 사회에 대한 환멸을 배경으로 한다는 유사점이 있다는 말씀인데요. 그밖에 다른 공통점도 있나요?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양자역학 물리학자들이 서로를 알고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어요. 흥미로운 건 이들이 한 공간에 있었다는 거죠. 국내에는 번역이 안 되었지만 현대물리학과 초현실주의 간에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책이 있어요. Gavin Parkinson이 쓴 이라는 책이에요. 이 책에는 양자역학 탄생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루이 드브로이의 사례가 담겨 있어요. 드브로이는 프랑스의 지체 높은 가문의 사람이었는데 당시 귀족들이 그랬듯 드브로이도 예술과 음악에 통달했었을 거라 추측돼요. 그가 1926년 예술 관련 잡지에 현대 물리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학적 혁명에 대해 글을 써요. 과학자가 예술 관련 잡지에요. 분명히 영향을 주고받은 거죠. 이 논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이긴 하지만 당시 몇몇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물리학에서 일어난 혁명을 알고 이걸 작품에 형상화했다는 이야기들도 나와요.”

 

-작품으로만 봤을 때, 가장 양자역학을 잘 알고 있었을 것 같은 작가는 누군가요?
“르네 마그리트에요. 제가 양자역학과 초현실주의와의 관련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예를 많이 드는 작가가 르네 마그리트거든요. 그의 그림에는 모순적인 상황들이 자주 나와요.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괴상한 상황들이요. ‘우상의 탄생’에서는 사방이 폭풍우로 뒤덮인 거실에 사람의 손을 가진 거대한 기둥 모양의 난간이 있고, ‘온당한 포로’에는 그림의 일부인지 풍경 그 자체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 불타는 트럼펫 옆에 서 있어요. ‘공동 발명’에서는 상반신이 물고기이고 하반신이 인간인 인어공주가 해변에 누워 있죠. 모순적인 상황들은 양자역학이 항상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과 양자역학의 관련성을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양자역학에 ‘중첩’이라는 것이 있어요. 공존할 수 없는 두 상태가 공존하는 건데요. 예를 들어 파리에 있으면서 동시에 브뤼셀에 있는 것이지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표절’을 보면 실내에 꽃병이 하나 있는데,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건물 밖의 나무가 존재해요. ‘빛의 제국’에서는 하나의 장면 속에 낮과 밤이 공존하고 있고요. 저는 이런 그림이 양자 중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봐요. 또 양자역학의 중요한 개념 가운데 ‘관측’도 있는데요. 중첩 상태에 있는 대상을 관측하면 갑자기 하나의 상태로 선택이 일어난다는 건데요. 예컨대 파리와 브뤼셀에 동시에 존재하는 사람을 제가 관측하면 그 사람은 파리와 브뤼셀 둘 중 하나의 장소에만 있게 된다는 뜻인데요. 관측하기 전에 그 사람은 두 장소 모두에 존재하고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긴 한데요. 르네 마그리트 그림에 등장하는 기둥 모양의 난간은 관측자를 나타내는데 어떤 그림에는 난간에 아예 눈이 달려 있기도 해요. 저는 르네 마그리트가 관측자의 존재에 집착한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마치 이해할 수 없는 양자 중첩 상태를 경험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관측이 필요한 것처럼 환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 관측자가 필요한 것을 의미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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